재료,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훌륭한 요리 – 안종우

by Be-Blogger Korea on: 5월 31st, 2012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가끔 그보다는 유에서 유를 찾아낸다는 표현이 더 공감이 갈 때가 있다. 원래 존재했지만 새로 그 의미를 발견한 재료나 제작 기법, 형태는 디자이너로 하여금 다양한 발상을 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시야를 넓혀 주기도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스토리나 컨텐츠가 아닌, 재료의 새로움에만 집착하게 되는 위험도 있지만, 바로 그것만 조심한다면 디자이너에게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새로운 도구와 시점이다.

어쩌면 이것은 요리와도 비슷하다. 다양한 재료와 요리방법을 알수록 더 많은 요리를 준비할 수 있고, 거기서 새로운 요리도 만들 수 있으니까. 더 맛있는 식사를 위해 요리사는 끊임없이 요리방법과 재료의 성질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분야만 다를 뿐, 디자이너도 일종의 요리사인 셈이다.
자, 이번엔 어떤 요리를 만들어 볼까?

학부 디자인 전공 초기에, 아이들을 타겟으로 스푼과 빨대를 합친 간단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 제품의 3D스케치를 해보던 중, 빨대의 색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여 결정한 재료가 바로 레진resin이다. 레진은 폴리코트라는 화학 약품을 실리콘 몰드에 투명하게 굳혀서 형태를 만드는 것인데, 그때 컨셉 목업mock-up을 만들면서 언젠가 이 재료로 조명을 만들어 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디어를 일기로 써둔 것이 3년 전 이야기였는데, 베네통의 Be-blogger로 활동하게 된 것을 계기삼아 미루어 두었던 레진 조명을 만들어 보았다.

전구라는 물건이 지닌 라인은 참 매력적이다. 둥그런 볼륨감에서 날카롭게 따라 내려오는 선은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원래의 전구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조명 디자인이 항상 부딪히게 되는 것은, 바로 사용상의 위험이다. 일단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감전의 위험도 있고, 뜨거운 발열 때문에 화재의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그렇기에 손으로 오랫동안 만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게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아름다운 빛을 내뿜던 자태와는 달리 뒤처리 귀찮고 위험한 유리조각이 된다.

레진이라는 재료는 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다. 파손 뒤 다칠 염려도 없고, LED를 사용하면 발열의 문제도 없어지는 데다 에너지까지 절약할 수 있다. 심지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으니, 볼수록 매력적인 재료이다. 사실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이 착한 재료가 보여 준 가장 큰 매력은 어떠한 모양으로도 가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구를 갈아낸다’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까? 레진은 그 형태를 가능하게 해 준다.

평소와는 다른 전구의 형태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은 디자이너인 나로 하여금 대단한 흥분에 빠져들게 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요리해 볼까, 어디에 응용을 해 볼까 하며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금새 머리를 가득 채웠다. 물 속에 넣어 볼까? 책에다 붙여 볼까? 액자와 합쳐 볼까? 수없는 그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 후, 기왕 조명으로 쓸 것이니 벽에다 붙여 보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디자인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간단한 스케치를 통한 아이디어를 베이스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방산시장을 돌며 구한 소켓과 케이블을 손질하는 동안, 실리콘 틀 안에서 전구는 예쁘게 굳어져 나왔다. 전선 작업을 조금 해 주니, 멋진 전구 조명이 완성되었다.

갈아진 단면엔 흡착고무가 달려 있어 쉽게 벽에 붙어, 전구가 벽에 박혀 있는 듯한 모습이 된다. 벽에 콕 박혀 있는, 그리고 전지를 사용하기에 전선이 끊겨 있는 것처럼 보여도 불이 들어오는 것이 재미있다. 이 조명을 다양한 인테리어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또 다른 기대와 생각을 끝없이 하게 된다.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시도로 이번 요리를 완성해 보았다. 곱구나! 주변의 대중들과 소통하며, 당분간은 이 조명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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